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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모든 것들의 리뷰/서평 - 그 외

[책리뷰]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비판 #비평

by 남다른 IT 개발자 2022. 2. 27.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나는 이 책을 두번이나 연달아 읽었다. 독서모임 선정 책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고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의 맥락을 놓치기 일쑤였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작가의 생각은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필사를 하면서 책을 두번이나 읽은 뒤에야 이 책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공감가는 부분도 많지만 글 전체를 지배하는 작가의 생각과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다. 

  난 이 책에서 정의하는 내리막 세상에도, 그리고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에도 동의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안되고 이해가 잘 되지 않은 것은 작가가 세상과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랑 많이 달라서 인것 같다. 우선 내가 감히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평가하자면 작가는 충분히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대부분에서 작가는 시장, 자본주의, 능력주의, 현대 사회, 전통적 일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 것들이 내리막 세상을 만들고 우리가 내리막 세상에서 알하게 만드는 이유, 노마드가 될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내리막 세상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더라도 열심히 일한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거대자본과 기업이 만들어 낸 일자리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모되는 부품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자본에 의해 세뇌되어 성실하게 일한다고 한들 우리는 충분히 보상받지도 못하고 자본으로부터 배신당하게 된다. 우리의 고용이 유연하게 또는 불안하게 된 것은 자본이 우리를 쉽게 해고하기 위해서이다. 이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인데 시장과 자본의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해서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을 아무런 사회적 역할없이 시장으로부터 핍박받기만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노마드에 일정부분 공감하지만 완전히 공감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누구도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고 사실 우리 스스로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급변하고 다변화 될 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나 일하는 모습, 직장에서의 모습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노마드의 삶도 우리사회가 변화면서 나타난 다양한 일하는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절대 다수의 삶이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마드의 삶은 작가와 같은 글쓰는 일을 하거나 IT 개발자와 같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덜 받고 프로젝트성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업종에서 일할 수 있는사람에게나 통용된다. 

  이 책은 현대 사회나 전통 사회에서 추구하는 성실함의 가치를 매우 과소 평가한다. 작가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와 드라마 미생을 예로 들며 우리가 성실히 일을 하면 결국에는 배신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실히 일하는 개미와 오차장을 불쌍하게 또는 우둔하게 바라본다. 나는 왜 성실히 일하면 배신을 당하는지, 작가가 왜 성실의 가치와 의미를 낮게 깔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반대로 배짱이의 삶을 예찬한다.  베짱이는 개미못지 않게 성실하다고 말하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성실이 아니라 즐기는 성실을 다한다고 한다. 즐기지도 못하는 개미는 오히려 베짱이보다 불행할수 있다고 한다. 베짱이의 삶이 이렇게까지 찬양할 정도로 바람직한 삶의 태도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작가의 입맛대로 너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특히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작가가 조사와 연구를 통한 객관적인 숫자와 사실보다는 권위있는 학자의 말이나 몇가지 사례 또는 자신의 경험을 인용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을 토대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양 단정적지어 말하는 내용도 많고 본인이 생각이 절대 주류가 아닌데 본인의 생각이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양 "우리"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작가의 어조도 많이 불편했는데 작가가 매우 단정적인 어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반감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 책은 읽기에 편한 책도 아닌데 왜냐하면 작가가 참고 문헌을 인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아는 것이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많이 든다. 글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에 대한 작가 본인의 철학을 말하는 부분보다 다른 문헌의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이 많아서 작가의 생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한 문단을 읽으면서도 그 문단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았다.  

  나는 이 책을 현대사회에서 부적응한(그래서 직장에서 퇴사해 서울에서 벗어나 대관령에서 살고 있는), 돈벌이로서의 일보다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속해 있는, 작가가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공장, 기업과의 고용 관계를 떠나서 경제적인 안정 없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하며 살 수 없다. 작가의 생각은 작가와 같은 특수한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의견일 뿐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책은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작가와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는 소수의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이다. 

 

  이 책은 안내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안내서라는 제목과도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우리가 내리막 세상에서 노마드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이나 친절한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 이 책은 일의 다층적인 의미에 대해서 탐구해보다가 밥벌이로서의 일을 하지 말고 일에서 재미, 의미, 인간 관계 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작가는 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일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는 작가 본인이 일하는 롤링다이스를 소개하며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해결책으로 협동조합을 제시한다. 일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다가 갑자기 동료, 사회공동체, 협동조합 얘기가 나와서 당황스럽다. 결국 우리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답이 사회공동체, 협동조합인가? 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 같다.  

 

 아래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에 나온 문장들이다.

p.27 이제 누구도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대개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며, 사실 우리 스스로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에 위안을 느낄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급한 일반화가 심하다. 뉴스만 검색해봐도 10년전부터 최근까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취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설문조사한 결과 고용 안정성은 3위밖으로 벗어 난적이 없다. 연봉과 1위자리를 앞다툰다. 어떠한 설문조사나 연구결과의 인용없이 작가의 경험과 생각대로만 내린 결론이다. 설문조사들이 보여주듯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직장에 대해 불안함을 느낄때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고용 안전성이라고 생각한다.)

p.28 현실에서 오차장 같은 니가 결국 배신당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에 온 힘을 다한다고 보상과 인정이 무조건 따라오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정의로운 이가 결국 승리'하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나 어울리는 결말이다. 
p.49 현실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닥칠 현실은 지금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커보인다.
p.176 공장제 노동이 도입되면서부터 자본은 사람들을 고용해 한곳에서 정해진 만큼 일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런 강제를 달갑지 않게 여겼음은 당연하다. .... 사회는 고용 노동 밖의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없애 갔고 고용되지 않은 이들에게 닥친 운명은 절대적 빈곤이었다. 
p.192 무리속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히 제 역할을 하는, 그 덕에 추운겨울을 대비할 수 있는 개미의 시대는 끝났다. 개미처럼 살았다가는 버려지기 십싱이다.
p.200 나는 내 일이 의미가 있길 바란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고 일의 과실을 그들과 나누고 싶다. 나의 일에서만큼은 일하는 자와 책임지는 자, 대가를 가져가는 자가 최대한 같았으면 좋겠다.
p.237  내 존재 자체를 일의 규정에 포함해주는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일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우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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